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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모르는 모유의 진실, 알고보니 '헉'

2013-02-27


엄마도 모르는 모유의 진실, 알고보니 ‘헉’

[강석기의 과학카페 115] 모유의 과학

2013년 02월 25일
 

모유를 먹은 아이가 분유를 먹은 아이에 비해 똑똑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연구결과가 나와 주목받고 있다. 동아일보DB 제공

지난주 환경부와 국립환경과학원은 산모 1700여 명과 생후 12개월까지 영·유아를 대상으로 모유와 분유의 차이를 밝힌 결과를 발표해 주목받았다. 2006~2012년까지 6년 동안 실시된 이번 조사에 따르면, 태어나서 1년 동안 모유만 먹은 아이는 분유만 먹은 아이에 비해 인지력 점수를 약 7% 더 받았을 뿐만 아니라 아토피 피부염 발생률도 절반으로 떨어졌다. 모유가 좋다는 말은 예전부터 있었지만, 이런 구체적 결과를 보고 모유 수유를 결심한 예비 엄마들이 많이 늘었을 듯 싶다.

이 뉴스를 보면서 수년 전 ‘네이처’에 실린 기사 하나가 떠올랐다. 주간과학저널인 ‘네이처’에는 한 달에 한 번 꼴로 ‘Outlook(조망)’이라는 타이틀로 특정 주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는데 특이하게 기업체가 후원을 한다. 내용은 생명과학이나 의학, 생활과학이 주를 이룬다. 2010년 12월 23/30일자 아웃룩은 ‘영양유전체학(nutrigenomics)’이 주제였는데 당시 스폰서는 스위스의 세계적인 식품회사 네슬레였다.

22쪽에 걸쳐 10꼭지의 글이 실렸는데 그 중 하나가 모유에 대한 최신 연구결과였다. 분유를 만드는 식품회사가 모유가 왜 좋은지 입증한 연구를 지원하다니, 경영자가 이런 이해관계를 초월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들이 지원한 특집에 이런 글이 실릴 걸 예상하지 못한 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그 기사에는 놀라운 내용들이 많았다. 모유는 분유보다 아기가 필요로 하는 영양을 더 적절하게 공급해주고, 출산 직후 모유에는 아기의 면역력을 높여주는 성분이 많아 꼭 먹여야 한다는 정도만 알고 있던 필자로서는 지난 10여 년 동안 밝혀진 모유의 과학에 입을 딱 벌릴 정도로 감탄했다.

●모유로 장내미생물 선별

먼저 모유는 시기별로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출산 뒤 3일까지 나오는 젖을 ‘초유(colostrum)’이라고 부른다. 초유에는 지방이나 카제인 단백질 함량은 낮은 반면 다양한 항체와 면역조절 역할을 하는 사이토카인인 인터류킨-10 같은 성분이 많이 들어있고, 특이하게 ‘모유올리고당(HMO)’이란 영양분도 풍부하다. 초유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역시 아기의 면역력을 높이는 데 있다.

출산 뒤 3~7일 사이의 모유는 과도기적이다. 초유에 비해 영양분인 지방과 카제인 단백질, 젖당의 함량이 높아지고 면역성분이나 모유올리고당은 줄어든다. 출산 2주 이후에 나오는 젖은 전형적인 모유로 아기의 성장에 최적화된 조성이다. 그런데 기사는 두 번째 단계의 모유 조성을 ‘유익균이 특히 좋아한다’고 표현했다. 즉 이 시기의 모유는 아기가 아니라 박테리아의 입맛에 최적화돼 있다는 말이다.

출산 초기 모유에 많이 들어있는 모유올리고당은 아기를 위해 만들어내는 게 아니다. 아기의 장에 정착할 박테리아가 좋아하는 먹이라는 것. 즉 엄마는 아기의 장 안에 유익균이 제대로 자리잡게 도와주기 위해 모유에 이런 성분까지 넣어준 셈이다. 신생아의 장에는 박테리아가 없으므로 먼저 깃발을 꽂는 놈이 임자인데 만일 유해균이 선점하면 평생 장 건강이 안 좋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중반 행해진 연구에 따르면 보통 모유에는 모유올리고당이 100여 가지나 존재하는데 유익균의 대명사인 비피도박테리아(Bifidobacterium infantis)가 모유올리고당을 잘 먹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비피도박테리아는 설사를 일으키는 유해균이 장에 자리잡지 못하게 하는 ‘아군’이다. 모유올리고당은 박테리아성 설사의 주범인 캄파일로박터(Campylobacter jejuni)가 장점막에 달라붙는 걸 막는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뿐만 아니라 모유를 통해 유산균이 엄마에서 아기로 이동하기도 한다. 즉 유산균이 백혈구 속에 들어가 혈관을 타고 젖샘까지 이동하고 젖에 섞여 아기의 입을 통해 아기의 장에 도달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유산균은 과산화수소와 항균성단백질인 박테리오신을 분비해 병원성 박테리아의 정착을 방해한다.

한편 모유를 먹이면 아이가 똑똑해진다는 사실은 외국의 연구에서도 확인돼 2008년 논문이 발표된 적이 있다. 6살 때 IQ검사를 하자 모유를 먹은 아이들이 평균 5.9 더 높았다는데, 이는 우리나라 인지능력 측정 결과와 비슷한 수치다. 캐나대 맥길대 마이클 크래머 교수팀을 비롯한 공동연구팀이 벨라루시아의 아이 1만3889명을 대상으로 모유와 분유의 차이를 조사한 프로젝트인 PROBIT을 진행했는데 모유 예찬론자들에게는 다소 실망스런 결과를 냈다. 즉 생후 1년까지는 모유를 먹는 게 여러 면에서 더 좋은 걸로 나왔지만 6살 때 조사하자 모유를 먹었던 아이나 분유를 먹었던 아이나 별 차이가 없었다고. 그런데 유일한 예외가 바로 인지능력이었다! 즉 아이가 똑똑해진다는 것만은 모유의 가장 확실한 효과인 셈이다.

2007년 ‘미국립과학원회보’에 실린 논문에는 모유가 아이의 인지력을 높여주는 메커니즘이 제안됐다. 즉 모유에 들어있는 불포화지방산인 도코사헥사에노익산(DHA)과 아라키돈산(AA)이 FADS2라는 유전자를 조절해 뇌의 뉴런 발달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가설이다.
 
젖이 가득 찼을 때 처음 나오는 젖은 유지방이 적어 묽지만(왼쪽) 나중에는 유지방이 풍부한 조성이 된다(오른쪽). 덕분에 아기는 젖을 먹을 때 처음에는 갈증을 덜고 나중에는 배고픔을 달래게 된다. 사진은 한 여성에게서 한 번에 얻은 모유다. 위키피디아 제공

모유는 아들 딸 구분한다

아기가 튼튼하게 잘 자라게 하기 위해 최적화된 모유야말로 ‘모정의 정수’라고 생각할 즈음 약간 마음에 걸리는 연구결과도 하나 있다. 2010년 ‘미국 인간생물학저널’에 실린 논문으로 아기가 아들이냐 딸이냐에 따라 모유의 영양분 조성이 다르다는 내용이다.

아기가 2~5개월인 미국 보스턴의 중산층 산모 25명의 모유를 얻어 분석한 결과로 남아 엄마 젖이 여아 엄마의 젖보다 지방과 단백질이 더 많아 칼로리가 25%나 더 높았다고.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흥미롭게도 이들의 연구결과는 1973년 ‘사이언스’에 실린 한 논문이 제시한 가정이 사람에서도 일어난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다.

저명한 진화생물학자인 미국 하버드대의 로버트 트리버스(現 럿거스대 교수)와 수학과 댄 윌라드가 함께 쓴 이 논문은 냉정한 진화론의 관점에서 부모가 자식을 돌보는 건 결국 자신의 유전자를 더 많이 퍼뜨리기 위함이라고 가정한다. 그렇다면 부모가 여유가 있을 때와 없을 때 자식을 돌보는 방식을 달리해야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오늘날 ‘트리버스-윌라드 가설’로 불리는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여유가 있을 때는 아들에, 어려울 때는 딸에 더 투자해야 더 많은 자손을 나을 수 있다. 즉 일부다처제 동물에서는(사람도 결혼이라는 제도가 정착하기 전에는 여기에 속했다) 강한 수컷이 더 많은 암컷을 차지할 수 있기 때문에 새끼를 강한 수컷으로 키울 수 있는 여력이 있다면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반면 암컷은 어차피 낳을 수 있는 새끼가 제한돼 있으므로 투자대비 효율이 떨어진다.

한편 상황이 안 좋을 때는 수컷 새끼보다 암컷 새끼에 더 투자를 해야 한다. 부실하게 자란 수컷은 어차피 암컷을 차지하는 경쟁에서 밀릴 것이므로 포기를 하고 대신 암컷 새끼가 짝짓기를 할 수 있는 몸상태를 만들어 주면 자손을 이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트리버스-윌라드 가설을 증명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 제안됐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모유의 성분이다. 한 번에 새끼 한 마리만 낳을 경우 새끼의 성별에 따라 모유의 조성이 다를 수 있지 않을까. 즉 어미가 여유가 있으면 수컷 새끼일 때 젖의 영양분이 더 풍부할 것이고 어미가 힘들게 살면 그나마 암컷 새끼일 때 젖의 영양분이 더 나을 것이기 때문이다. 2010년 모유 비교 논문은 사람을 대상으로 풍족한 환경에서 트리버스-윌라드 가설이 입증됨을 처음으로 보인 사례다.

미국 미시건대 인류학과 마사코 푸지타 교수팀은 2012년 9월 ‘미국 자연인류학저널’에 실린 논문에서 아프리카 케냐의 농업목축을 하는 아리알(Ariaal) 부족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경제적 지위와 자녀 성별에 따른 모유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트리버스-윌라드 가설이 성립한다고 밝혔다. 즉 부유할 경우 아들을 둔 엄마의 젖은 유지방 함량이 평균 2.8%로 딸인 경우의 0.6%보다 훨씬 높았다. 반면 어려운 가정의 경우 아들인 경우는 2.3%, 딸인 경우는 2.6%로 오히려 역전이 됐다. 이 연구 결과는 부유한 집안의 딸일 경우 모유의 유지방 함량이 너무 낮은 걸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지만 아무튼 전체적인 패턴은 트리버스-윌라드 가설을 따르고 있다.

엄마가 의도적으로 모유의 성분을 조절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이런 현상은 의식 너머에서 생리적으로 즉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일이겠지만 모유에서조차 가장 많은 자손을 보기 위한 자연의 ‘수학’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왠지 좀 찜찜하다.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