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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 윤명희 원장님께 감사를 전하며..

  • 이른둥이맘
  • 2012-02-19 21:23:00

임신 27주에 910g 아기 출산한 엄마의 모유수유

 

< 조산.... 아기와의 이른 만남 >

유별났던 입덧이 끝나고 6개월이 넘어서자 배도 볼록 나온 것이 조금은 임산부 티가 났다.

6개월 정도면 안정기에 들어간다고 하여, 신랑과 태교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을 즈음,

갑자기 조기 진통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진통인 줄도 모르고 무리를 했나 싶어 안정을 취했지만 나아질 기미는커녕 생리통 같은 통증이 10분 주기로 오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조산은 생각지도 않은 일이였다.

급하게 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받은 뒤 입원을 해서 링거를 맞았지만 진통은 잦아들 줄 모르고, 결국 동네 산부인과에서는 손 쓸 길이 없어 00의료원으로 후송되었다.

그때부터 누워서 버티기가 시작되었다.

식사시간 이외에는 일어나지도 못하고 누운 채로 대소변을 보며 하루하루를 버텼지만,

결국 27주에 아기는 세상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핏덩이라는 말이 무엇인지를 난 그날 우리 아기를 보고 온 몸으로 온 마음으로 알 수 있었다. 910그람의 새빨간 핏덩이가 모기만한 소리를 내며 자신의 탄생을 알려왔고,

난 그 들릴 듯 말듯 한 울음소리를 듣고, 결국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와 분만실에서 손이 묶여 누운 채로 한참을 통곡을 하고 말았다.

얼굴을 보지도 못하고 아기는 응급 처치를 받은 후 곧장 인큐베이터로 들어갔고,

난 다음날 면회시간이 되어서야 아기를 볼 수 있었다.

마음을 굳게 먹고 갔지만 인큐베이터 안에 아기를 보고 무너지는 마음을 추스를 수 없었다. 피부라고 할 수 도 없는 얇은 막으로 싸여진 몸과 얼굴, 그 위로 주렁주렁 달려있는 주사바늘과 기계들 사이로 보이는 아기는 밭은 숨을 헐떡이며 간신히 버텨내고 있었다.

< 모유... 그리고 유축과의 전쟁 >

기특하게도 잘 버텨주고 있는 아기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모유를 짜서 가져다주는 일 뿐이었다. 특히 28주 이전에 태어난 아기들은 엄마로부터 받은 면역력이 전혀 없기 때문에 모유를 통해서만 면역력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아마도 더 필사적이 되지 않았나 싶다.

출산 3일후부터 가슴이 딱딱해 지더니 말로만 듣던 젖몸살이 찾아왔다.

혼자 손써볼 방법이 없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모유사랑 유방 마사지의 문을 두드렸다. 퉁퉁 부어올라 돌을 넣어 놓은 듯 딱딱해진 가슴도 아팠지만, 치밀 유방에 잔뜩 민감해져 있는 유두는 건드리기만 해도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하지만 모든 고통은 아기를 위해 참아내야 했고, 그날부터 유축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딱딱해진 가슴을 이리저리 마사지 해가며 30분 이상 유축을 해도 나오는 건 겨우 10미리 뿐이었다.

태어나서 일주일간 금식했던 아기가 먹을 수 있는 양이 겨우 1미리였기에 10미리도 감사한 마음으로 한 방울 한 방울 유축을 했다

3시간에 한 번씩 유축을 하고, 열흘에 한 번씩 유방마시지를 받은 결과 조금씩 유축 양이 늘기 시작했지만 이내 유축기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강한 압력으로 인해 유두에 상처가 나고 유룬 부위가 부어올라 더 이상 유축을 할 수 없었다. 장기적으로 스팩트라를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결국 메델라 유축기를 대여하여 사용하기 시작했다. 한 달에 13만원이라는 가격이 부담스러웠긴 했지만, 기존의 유축기에 비해서 압력이 세지도 않고 부드럽게 유축이 되어 훨씬 편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유축기 사용에도 익숙해지면서 일주일에 10미리씩 늘던 양이 어느새 40미리, 70미리, 120미리로 늘어났다.

모유 양이 많은 사람들에 비하면 적은 양이겠지만 워낙 가슴 상태가 좋지 않았던 나로서는 큰 발전이었다.

하지만 하루에 8번씩 매번 1시간 가까이 유축을 하다 보니 깔때기에 쓸려버린 유륜이 물러지더니 진물이 흐르며 간지럽기 시작했다. 습진이 생긴 것이다. 간지러움의 고통 또한 상상 이상으로 괴로웠다. 긁으면 긁을수록 습진 부위가 넓어지고 진물이 흘러 굳어져 딱딱해지다가 유축을 할 때 마다 딱지가 떨어져나가기를 반복했다. 또 계속되는 유축에 유륜 부위가 늘어나버려 너덜너덜해지곤 했다. 아기를 생각하며 참아낸 시간 이었지만 새벽에도 3시간마다 일어나 유축기를 소독하고 유축을 할 때면 고문을 받는 기분이 들기도 했었다.

식생활, 수면, 외출, 이 모든 것을 포기해 가며 정말 하루하루를 모유를 위해 살았고, 또 모유 때문에 울고 웃었다. 10미리라도 더 나오는 날에는 내 배가 부른 듯 기분이 좋았고, 조금이라도 줄어드는 날에는 불안한 마음에 물과 두유, 유축기를 끼고 살았던 나날이었다.

< 모유 거부 >

하지만 워낙 작게 태어난 아기라 장이 미숙하여 걸핏하면 금식하기 일쑤였고,

수유양이 조금 늘었다싶으면 이내 설사를 해서 병원에서는 결국 특수 분유를 처방하여 먹이고 있었다. 잠도 설쳐가며 힘겹게 짜낸 모유들이 버려졌고, 10미리씩 간신히 모아두었던 초유마저 병원에서는 먹이지도 못했다고 한다.

한 달 가까이 설사가 멎지 않아 유당 알레르기를 의심해봐야 하며, 이 경우 모유를 먹이지 못하고 계속 특수 분유를 먹여야 한다는 의사의 설명에 지금까지 해 왔던 노력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아 얼마나 허무했는지 모른다.

계속 유축을 하면서 아기 상태를 보며 기다려야 하는 건지 그냥 모유를 포기하고 분유를 먹여야 하는 건지 고민했지만, 만에 하나 모유를 먹일 수 있는 상황에 젖이 말라버려 못 먹인다면 큰 후회를 할 것만 같아 끝이 보이지 않는 유축을 계속 하기로 했다.

그렇게 석 달이 지나고 병원에서 드디어 퇴원 소식이 들려왔다.

재태 주수로 38주가 되던 날 2.3키로가 된 아기는 여전히 작디작았다.

집에 갈수 있는 기쁨도 컸지만 장기간 계속된 금식과 설사로 인해 몸무게가 미달이여서

계속해서 저체중아를 위한 특수 분유를 먹여야 한다고 했다.

모유를 먹일 경우 모유강화제라는 보조제를 섞여 먹여야 하는데, 우리 아기는 모유강화제에 심한 거부반응을 보여 수유 중 포화도가 심하게 떨어지는 바람에 분유를 먹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의사의 설명이었다.

집에만 오면 직수를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건만, 이대로 직수의 꿈은 포기해야 하는 것인지 허무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었다. 아기를 안은 가슴이 찡하고 반응을 보이며 땡땡하게 불어왔지만, 분유를 먹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 직수의 꿈을 이루다 >

퇴원한 날 저녁, 환경이 바뀐걸 아는 것인지 심하게 보채는 아기 때문에, 우리 부부는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쩔쩔 매고 있었다.

분유도 충분히 먹인 후였고 기저귀도 갈아줘 봤지만 울음은 그칠 줄 모르고 계속 되었다.

방법이 없이 젖이라도 물려볼까 싶어 가슴을 내밀었더니 이게 웬일인지 단 한 번도 엄마의 젖을 빨아 본 적도 없는 녀석이 젖을 덥석 물더니 힘차게 빠는 것이었다.

호흡 조절이 미흡하여 산소 포화도 측정기를 발에 차고 있어 내심 걱정을 했지만,

젖을 빠는 내내 빨다가 숨 쉬다가를 반복하며 호흡조절 또한 훌륭히 해 내고 있었다.

아기가 처음 젖을 물었을 때 유두를 잘라내는 듯이 아파왔지만 직수의 감동이 모든 것을 잊게 해 준 날이었다.

하지만 몸무게가 3.5키로가 넘어야 특수 분유를 끊을 수 있다는 말에 분유를 먹이는 동안에는 틈틈이 하루에 두세 번씩 간식 삼아 직수를 하며 꾸준히 유축을 했다.

민감 유두였던 탓에 한 달 가까이 직수를 할 때마다 유두를 도려내는 것만 같은 아픔에 이를 악 물었지만 직수를 할 수 있다는 기쁨이 더 컸던 것일까, 그 아픔마저 기쁨으로 느껴졌다. 퇴원 후 한 달 뒤 3.5키로가 되던 날부터 지금까지 완모를 하고 있다.

넉넉하지 않은 모유 양에 아기가 배고프지 않을까 매일 전전긍긍하며 수유를 하고 있지만

일주일에 꾸준히 200그램씩 늘고 있는 아기를 보면 왠지 뿌듯함마저 느끼곤 한다.

엄마의 젖가슴이야 말로 아기에게 내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싶다.

출생 시 호흡곤란으로 폐이형성증 진단을 받아 감기에 특히 조심하라고 주의를 받았지만,

퇴원하고 교정 100일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단 한 번의 잔병치레도 하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모유의 기적이 아닐까 싶다.

< 조산 그리고 우울증 >

임신을 하면 당연히 열 달 뒤에 아기를 낳은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간혹 가다 텔레비전에 조산에 대해 나와도 정말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7개월 만에 아기를 낳았을 때엔 정말 심한 죄책감과 우울증이 찾아왔다.

의료진에게 듣는 최악의 상황들...뇌출혈로 인한 뇌성마비, 미숙아 망막증으로 인한 실명, 심장 기형 등 알 수 없는 의학용어들이 심장을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

퇴원 후 에도 걱정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고, 자연히 사람들과도 멀어져 가고 있었다.

마치 큰 죄를 진 것처럼 어디 가서 말 할 수도 없었고, 말 한 다 해도 남들 다 하는 거 하나 못하냐는 생각을 하는 것만 같아 매일 혼자서만 가슴앓이를 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곳이 모유사랑이었다. 처음에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찾아간 곳이지만, 난 그 곳에서 가슴뿐만이 아니라 마음까지도 치유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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